* 지훈은 양손 가득 사 온 것을 냉장고에 넣은 뒤 과자 하나랑 맥주 하나를 손에 쥐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. 그리곤 늘 하던 대로 앞에 놓인 TV 리모컨을 들고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예능 프로의 <다시 보기> 서비스를 결제했다. “하하하하하!” 지훈은 TV 속 연예인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며 목젖이 보이게 웃었다. 그때 샤워를 마친 윤이 머리에 ...
* 홍보팀, 업무지원팀과 연이어 회의를 끝낸 서준은 그제야 자신이 저녁 식사를 못했음을 깨달았다. 하지만 가장 중요한 미팅이 하나 더 남은 상황이라 허기는 어제 주현이 준 쿠키로 달래야 했다. 뇌물로 쿠키를 받은 일과 출근 전에 파주에서 아침 겸 점심을 거하게 먹은 일이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.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. 서준은 급하게 쿠키를 넘기고 안정...
* 서희는 원목 대문 앞에 주차를 마치고 자동차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.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보다 답답함이 더 컸다. 조금 전 삼키듯 넘겼던 서준의 ‘상관없습니다’가 마음 한구석에 걸려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. 먼저 퇴근했던 윤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. -서희야, 너 퇴근했어? “응.” -집이야? “아니, 집 앞.” -뭐 하고 있어. “죽었어. 사인은 수...
* 팀장실로 들어온 상담실장 주현은 챙겨온 서류와 커피 한잔을 서준에게 건넨 뒤 팀장실 중앙에 놓인 회의용 테이블에 앉았다. “팀장님, 오시자마자 서류부터 드리게 되어 몹시 송구스럽습니다.” “아닙니다. 이렇게 챙겨주시니 제가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. 그리고 커피는 다음부터 제가 가져다 먹도록 하겠습니다. 부탁하시면, 실장님 커피도 제가 준비 하겠습니다.” ...
* 지훈은 고개 숙인 두 여자를 향해 입을 뻥긋거렸다. ‘왜? 왜? 무슨 일인데?’ 두 여자는 대답 대신 지훈에게 빨리 앞 보라며 손등으로 거센 바람을 만들었다. 세미나실 들어왔을 때부터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 약이 바짝 오른 지훈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격하게 입을 뻥긋거렸다. '아, 왜! 뭐냐고! 왜 그러는 건데! 뭔데에에에에에에!' 휙- 윤의...
* 서준은 조용히 숨을 나누며 허공을 응시했다. 마치 무중력 지대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비현실적이었다. 마음에 틈입한 어떤 소유욕은 강한 태양 아래 놓인 물처럼 모두 증발한 뒤 남은 자리에 균열을 일으켰다.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지, 포기가 필요한 시점인지 헷갈렸다. 서준은 서희의 뒷머리를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서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. 옅은 ...
* 승현은 윤에게 바짝 상체를 기울이고 물었다. “실례지만, 두 분은 무슨 일 하세요?” “저희는.” 윤이 답하려는데 서희의 자몽한 목소리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. “작가예요.” 윤의 정수리에서 물음표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. 안 그래도 큰 눈은 더 크게 떠졌다. 얘는 무슨 주사를 이렇게 스펙터클하게 하느냐는 얼굴이었다. 윤은 양 볼이 발그레한 서희를 향해 고...
* Silver Lining이라 써진 네온 간판 앞에 선 서희와 윤의 자세가 평소와 사뭇 달랐다. 차콜 그레이 미니 원피스는 윤의 몸매를 훤히 드러나게 했고, V넥 블랙 슬림 니트는 서희의 쇄골과 가슴골을 돋보이게 했으며, 신발장에 고이 모셔져 있던 킬 힐은 두 사람을 팔등신처럼 보이게 도왔다. 윤은 Silver Lining 간판 앞에서 경주를 앞둔 레이싱...
* "그럼 미국 지사일은 누가 배우고 있어요? 누군가는 형 몫을 해야 하잖아요." 해록은 자신이 미국 지사에서 일할 것도 아니면서 궁금한 게 많았다. "아마... 아버지 지인분의 아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을 걸." "엥? 생판 남이 미국 지사 차기 경영자라고요?" "생판 남은 아니야. 할아버지 형의 넷째 딸의 막내딸의 약혼자거든." 서준의 도피 생활을 도운 ...
* 운동을 마친 네 남자는 카페 ADAGIO에 들어와 한겨울에도 아이스커피 네 잔을 시켰다. 승유는 해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. “너 내일이 오픈 날인데 여기 있어도 돼?” “응, 가장 친하다는 놈들이 내일 못 온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친히 왔지 뭐.” “아이, 자식, 사람 미안해지게... 나 같은 직장인이 별 수 있니. 부장님이 산 타자면 ...
* 해록과 통화를 끝낸 뒤 팀장실로 들어온 윤은 잔뜩 상기된 낯빛을 하고선 입술을 축였다. “서희야, 너 일요일에 스케줄 뭐 있어?” “오전에 양평 가는 거.” “그럼 나도 같이 갈까.” 서희는 진주가 연상되는 화이트 블라인드 샘플과 라피스라줄리가 연상되는 클래식 블루 블라인드를 통창문에 번갈아 대며 답했다. “좋지, 할머니도 좋아하시겠다. 음... 여긴 ...
* 1 년 후, 2015년 12월 어느 금요일 시험 대비 수업을 마치고 녹초 된 두 여자는 퇴근할 생각도 않고 젖은 빨래처럼 의자에 널렸다. 윤은 떫을 감을 먹었을 때처럼 입을 쩝쩝거렸다. “서희야. 나 입에서 분필 맛 나. 진짜... 여기가 괜히 본원이 아니다.” 올초 서희와 윤과 지훈은 본원으로 자리를 옮겼다. 나름 승진 같은 개념이었는데, 본원 타이틀...
평범한 습작생. 더디고 어설픕니다. 빠른 전개를 원하는 분께는 권하지 않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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